이사장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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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개운하고 산뜻하다는 느낌보다는 답답하고 미심쩍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확 바뀌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짜증나고 지루한 밀고 당기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권 탈환에 실패해 난감해 하고 있는 소위 “주류”만이 아니라 노무현, 권영길에 투표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무겁고 어두운 공기가 감돌고 있는 까닭을 생각해 보면 <해야 할 일>과 <되어 가는 일> 사이의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어 생기는 <제대로 될 것 같지 않다>는 직감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정직한 말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현안 가운데서도 노동문제는 가장 예감이 좋지 않은 영역입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내용을 갖춘 차분한 정책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노사관계의 유연성을 더욱 높여야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국내 국외 재계의 노사관계 개혁 주장만이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주류가 하늘의 뜻처럼 떠받드는 미국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포츈지가 한국의 노사관계 유연성은 세계 제3위라고 칭찬했지만 웬일인지 경제전문가들 가운데 이 기사를 가지고 미국 사람들한테 인정받았다고 자랑하자는 사람이 아직 없습니다.

지금 모든 국민들은 2월 18일 대구 지하철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해 답답해하면서 분노하고 있습니다. 인명 피해의 규모는 작지만 2월 15일에는 호남선에서 선로 보수 공사를 하던 노동자 7명이 열차에 치어 죽는 기가 막힌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이 두 사건에 대해 모든 언론이 기관사를 비롯한 근무자들을 매도하며 인재라는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 근무자들이 조금만 정성을 기울였으면 인명 피해가 줄어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탄하기 이전에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주류 사회에서 요즘 유행어가 되어 있는 <시장논리>에 따라 지난 일주일 동안 일어난 두건의 대형 <인재>를 진단해 보면 <사람 값>이 아직 너무 싸니까 구태여 안전 시설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산재 국가라는 창피도 <사람 값>이 싼 덕분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도 싼값에 사람 쓰는 재미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제를 반대합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 사람값으로 중국이나 동남아와 경쟁이 될 리가 없습니다. 직장에 정성을 바칠 수 있도록 일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값을 쳐주고 좋은 성과를 거두는 방향으로 발상을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많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습니다. 노조 건설이 일차 목표였던 1970, 80년대의 노동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종류의 노동운동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다수의 입장을 누가 대변할 것인가”라고 하는 문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다수가 “주류”입니다. 진짜 “주류”의 사람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때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한국 자체가 정상적인 사회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서울남부 노동자 상담센터>가 출발하는 날입니다.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상담센터가 자리잡고 있는 구로 지역은 한국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부터 일하는 사람 모두의 사람값을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가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다 같이 축하하고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 2월 19일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이사장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